총, 균, 쇠 – 발췌 및 요약

Jared Diamond의 총, 균, 쇠의 내용이 방대한 관계로 제가 주로 다루게 될 부분을 발췌하여 텍스트 인식 후 자동 요약한 것입니다.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 상황

인류 역사의 출발점: B.C. 11000년경

기원전 11,000년 전후의 세계는 여러 중요한 사건과 변화를 겪으며 인류 역사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이 시기는 몇 가지 주요 특징들로 정의된다:

  1. 촌락 생활의 시작: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 초기 형태의 촌락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농업과 목축 같은 활동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2. 남북아메리카 인류 정착: 이 시기에 남북아메리카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3. 빙하기의 종말: 홍적세 및 최종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로, 지구 기후가 점차 안정되며 인류의 생존 환경이 개선되었다.
  4. 지질학적 현세의 시작: 지질학자들이 현세라고 부르는 시대의 초기로, 현재 우리가 사는 시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

  • 아프리카의 중요성: 인류의 진화는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 유인원의 한 부류가 갈라지면서 시작되었다. 초기 인류는 고릴라, 침팬지, 피그미침팬지(보노보)와 같은 유인원들과 같은 조상을 공유했으며, 각각 다른 계통으로 분화가 진행되었다.
  • 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고릴라, 침팬지, 피그미침팬지는 모두 아프리카에 서식합니다.
  • 풍부한 화석 증거는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초기 인류의 발전

  • 약 400만 년 전, 인류는 직립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고, 250만 년 전부터는 신체 크기와 두뇌 크기가 커졌습니다.
  • 이 시기의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등의 종으로 진화했습니다.
  • 호모 에렉투스는 170만 년 전에 현대인과 비슷한 신체 크기를 가졌으나 두뇌 크기는 절반 정도였습니다.
  • 약 250만 년 전에는 석기가 보편화되었지만 그것은 매우 조잡한 박편석기나 뗀석기였다. 동물학적 중요성과 특성으로 판단하면 호모 에렉투스는 유인원 이상의 존재였지만 현대인에는 훨씬 못 미치는 존재였다.
  • 호모 에렉투스: 약 17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했으며, 이는 인류 진화의 중요한 단계였다. 이들은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인류의 아프리카 탈출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 약 50만 년 전, 아프리카와 유럽 인류의 두개골은 점점 더 커지고 둥글어지며, 현대인의 두개골과 상당히 유사하므로 호모 에렉투스가 아닌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됩니다.
  • 물론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이므 로 그러한 구별은 사실상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초기 호모 사피엔스도 세부적인 골격은 현대인과 달랐으며, 두뇌가 작고, 석기는 조잡했습니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불을 사용했으나, 예술이나 골기 등의 유물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 스트레일리아에는 아직 인류가 살지 않았는데. 동남아시아에서 그곳 으로 건너가려면 배가 필요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남북아메리카어디에도 인류가 살았다는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우선 유라 시아 대륙에서 야메리카와 가장 가까운 시베리아에 인류가 살고 있 어야 했고 또한 배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오늘날에는 물이 얕은 베링해협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갈라놓고 있지만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오르내림에 따라 해협이 되었다가 다시 마른땅으로 변해 드넓은 대륙간 육교가 되곤 했다). 그러나 배를 만들거나 추운 시베리아에서 생존하는 것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으로는 아직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존재

  • 네안데르탈인: 약 50만 년 전 유럽과 서아시아에 등장한 네안데르탈인은 약 4만 년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 1만 3천~4만 년 전의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살았습니다.
  •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보다 큰 두개골을 가졌으며, 죽은 자를 매장하고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 그러나 그들의 석기는 조잡했고, 예술이나 골기 등의 유물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10만 년 전 아프리카 인류

  • 이 시기의 아프리카 인류는 현대인에 더 가까운 골격을 가졌으나, 석기 제작 기술과 예술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 사냥 기술도 미약하여 위험하지 않은 동물만 사냥했으며,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 이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아직 완전한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5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와 서유라시아의 인류는 세부적인 골격에서 서로 달라졌고, 동아시아의 인류와도 달라졌습니다. 1만 3천~4만 년 전의 유럽과 서아시아에 살았던 인류는 유난히 많은 유골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네안데르탈인으로, 때로는 호모 사피엔스와는 별개의 종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만화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동굴에서 사는 유인원을 닮은 짐승 같은 존재로 그리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두개골은 우리보다 조금 더 컸습니다. 또한 그들은 죽은 자를 매장하고 환자를 돌보았다는 강력한 증거를 남긴 최초의 인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 뉴기니인들의 마제 돌도끼에 비하면 그들의 석기는 아직도 조잡했으며, 각기 뚜렷한 기능을 알아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표준화된 형태로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보다는 적게 남아 있는 동시대 아프리카 인류 의 유골 파편이 현대인의 골격과 더 흡사하다. 동아시아 인류의 유골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들은 그수가더욱 적지만 이것 역시아 프리카 인류나 네안데르탈인의 생김새와는 또 다르다. 그 당시의 생 활 방식을 알려주는 가장 잘 보존된 중거물은 남아프리카의 유적지에 쌓여 있는 석제 인공유물과 사냥한 동물의 뼈다

10만 년 전의 이 아프리카 인류는 동시대의 네안데르탈인에 비하여 현대인에 더 가까운 골격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석기는 여전히 표준화된 형태를 지니지 못하여 본질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조잡한 석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의 예술도 보존되어 전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냥 기술도 주로 죽이기 쉽고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동물을 사냥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들소, 돼지 등 위험한 동물은 잡지 못했고, 심지어 물고기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해안에 위치한 유적에서도 물고기 뼈나 낚싯바늘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동시대의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이들은 아직 완전한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대약진 시기에 나타난 현생인류 크로마뇽인

  • 역사의 시작 (약 5만 년 전):
    인류 역사는 약 5만 년 전 대약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확실한 증거는 동아프리카 유적에서 발견된 표준화된 석기와 최초의 보존된 장신구(타조알 껍질 구슬)입니다. 이러한 발전은 곧 근동과 유럽 동남부, 약 4만 년 전에는 유럽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유럽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완전한 현생인류, 즉 크로마농인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 도구와 생활 방식:
    크로마농인의 쓰레기 더미에서는 석기뿐만 아니라 골기도 발견되며, 그들의 도구는 매우 현대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크로마농인은 여러 부분으로 만들어진 도구를 사용했고, 작살, 투창기, 활과 화살 같은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크로마농인은 안전한 거리에서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고, 그물, 낚싯줄, 덫 등을 이용해 다양한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집과 의류를 만들어 추운 기후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장신구와 유골 매장 등을 통해 심미적, 정신적 발전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술적 능력:
    가장 유명한 크로마농인의 유물은 예술작품으로, 특히 프랑스 서남부의 라스코 동굴 벽화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벽화는 크로마농인의 예술적 능력을 보여줍니다.
  • 대약진의 원인과 논쟁:
    5만~10만 년 전에 인류의 능력에는 중대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약진의 원인으로는 현대적 언어의 발달과 두뇌 조직의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대약진이 특정 지역에서 시작되었는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약 10만 년 전의 두개골은 대약진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음을 지지하지만, 분자생물학적 연구 결과는 불확실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현생인류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 크로마농인의 우수성:
    약 4만 년 전, 현대적 골격을 가진 크로마농인이 유럽에 진입하며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습니다. 이는 크로마농인의 우수한 기술과 언어, 두뇌를 이용한 결과로 보이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농인 사이의 혼혈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
  • 크로마뇽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오스트레일리아 대형 동물군의 멸종

약 4만 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이 지역의 대형 동물군이 급격히 멸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대형 동물군에는 거대한 캥거루, 웜뱃, 그리고 메가파우나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멸종은 기후 변화와 인류의 사냥 압력 등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로 여겨집니다.

  • 기후 변화:
    기후 변화는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반복적인 변화는 식생과 물 공급을 변화시켜 대형 동물군의 생존을 어렵게 했습니다.
  • 인류의 사냥 압력:
    현생 인류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하면서, 이들은 효율적인 사냥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여 대형 동물군을 사냥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해 취약해진 대형 동물군은 멸종의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서 대형동물군의 멸종은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대형동물들은 다양한 이유로 멸종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주요 원인으로는 인간의 사냥과 서식지 변경이 지목된다. 인간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시점과 대형동물의 멸종 시기가 일치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인간의 영향이 컸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사냥을 통해 또는 간접적으로 서식지를 변경하여 이들 동물들을 멸종시켰다. 이러한 멸종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의 생태계와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축화될 수 있는 대형 야생동물들이 모두 사라짐으로써, 원주민들은 가축화를 통한 농업 발전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인류의 지리적 확장

유라시아로의 확장

인류가 유라시아의 극한 지방으로 확장한 시기는 약 2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는 현생 인류가 시베리아와 같은 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한 시기입니다. 바늘을 사용한 의류 제작, 따뜻한 집, 그리고 기타 생존 기술들이 이러한 확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과 달리 현생 인류는 이러한 기술을 통해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유라시아의 털매머드와 털코뿔소 멸종:
현생 인류의 확장은 유라시아 대륙의 대형 포유류인 털매머드와 털코뿔소의 멸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인류의 사냥 압력과 기후 변화는 이들 종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멸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인류의 범위가 확장된 곳은 유라시아의 극한 지방이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빙하기에 살면서 이미 추위에 적응했지만 독일 북부 및 키예프 이북으로는 진 출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바늘, 꿰매어 만든 의류, 따뜻한 집 등을 비롯하여 극한기후에서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 없었다. 한편 그러한 기술을 갖고 있었던 해부학 적 현생인류는 약2만년 전에(물론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 때문에 논란도 있지만) 시베리아로 퍼져나갔다. 유라시아의 털매머드와 털코뿔소가 멸종한 것도그러한 인류의 팽창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북아메리카로의 확장

남북아메리카로의 인류 확장은 베링육교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베링육교는 빙하기 동안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연결하는 육로가 형성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육교를 통해 인류는 약 1만 4천~3만 5천 년 전에 남북아메리카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클로비스 유적:
남북아메리카에서 인류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하는 유적은 BC 12000년경의 알래스카 유적들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캐나다 국경 이남의 클로비스 유적들이 있으며, 이는 인류가 북미와 남미에 확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대형 포유류의 멸종:
남북아메리카에서도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찬가지로 대형 포유류들이 멸종하였습니다. 약 1만 5천 년 전까지 북미 서부는 오늘날의 아프리카 사바나와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인류의 도착과 함께 대형 포유류의 대부분이 멸종하게 되었습니다.

클로비스 유적과 남북아메리카의 인류기원**

남북아메리카에서 인류의 존재를 알려주는 주요 유적 중 하나는 클로비스 유적이다. 클로비스 유적은 B.C. 11000년 직전의 몇 세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초기 인류가 남북아메리카에 도달한 시기를 가리킨다. 클로비스 유적에서는 커다란 돌 창촉이 발견되었으며, 이 유적들은 미국 전역과 멕시코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클로비스 유적의 발견은 초기 인류가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로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클로비스인의 후손들은 채 100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미국 캐나다 국경으로부터 파타고니아까지 도달하였으며, 이는 해마다 약 13km를 이동한 것과 같다. 이는 수렵 채집민들에게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인구 성장률 또한 주목할 만하다. 초기 이주민들이 100명 정도였고, 해마다 1.1%의 비율로 인구가 증가하였다면, 1000년도 안 되어 1000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구 성장률은 영국 전함 바운티 호의 폭도들과 타히티인 아내들이 핏케언 섬에 이주했을 때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 3.4%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다.

클로비스 현상은 인류가 새로운 대륙에 진입할 때마다 나타나는 일반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유럽, 그리고 남북아메리카에서 모두 초기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현상은 인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번영했음을 의미한다.

대형 포유류의 멸종과 인류의 확산**

남북아메리카에서도 오스트레일리아와 유사하게 대형 포유류의 멸종이 일어났다. 약 1만 5천 년 전까지만 해도 북미의 서부는 오늘날의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코끼리, 말, 사자, 치타, 낙타, 그리고 거대한 육지나무늘보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도래와 함께 많은 대형 포유류가 멸종했다. 이러한 멸종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사냥과 서식지 변경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남북아메리카의 대형 포유류 멸종 시기는 약 1만2천~1만 7천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류의 확산과 맞물려 일어난 사건으로, 인간의 활동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북미와 남미의 생태계는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이는 이후 인류의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아메리카에서 대형동물군의 멸종은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인간의 활동이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생활방식과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의 생태계와 인류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인류의 최종 확장

인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남북아메리카를 차지하면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대륙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류는 대양의 섬들로도 확장하였으며, 폴리네시아와 마다가스카르, 아이슬란드 등지에도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확장은 인류의 탐험과 항해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졌습니다.

**현대의 유인 지역**:
마지막으로 인류가 정착한 지역은 아조레스 제도와 세이셀 제도 등 대서양과 인도양의 외딴 섬들, 그리고 남극대륙이었습니다. 이들 지역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곳에는 인류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유명한 전사들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인구 증가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

농업의 도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농부들이 유명한 전사들을 이길 수 있었던 몇 가지 주요 이유로 설명된다:

  1. 인구 증가
    • 농업은 단위 면적당 훨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는 인구 밀도를 높여 주었고, 대규모 군대를 조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 수렵 채집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제한적이었고, 자연 환경에 의존했으나, 농업을 통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식량 공급이 가능해졌다.
  2. 정주 생활
    • 농업의 도입으로 인해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고, 이는 복잡한 사회 구조와 방어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정주 생활은 인구 증가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 구조의 복잡성을 증대시켰다. 이는 군사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3. 식량 저장
    • 농업 사회는 수확한 식량을 저장할 수 있었으며, 이는 전쟁 시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 되었다.
    • 비축된 식량은 긴 전쟁 기간 동안 지속적인 식량 공급을 보장하여, 전사들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4. 전문화와 기술 발전
    • 농업은 사람들에게 식량 생산 외의 다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으며, 이는 무기 제작, 군사 전략 개발 등의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끌었다.
    • 농업 사회에서는 전문화가 이루어져, 군사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는 전사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5. 병원균의 역할
    • 가축화된 동물들과의 긴밀한 접촉은 농업 사회에서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고, 면역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했다.
    • 농업 사회는 이러한 병원균을 통해 면역력을 갖추었고, 이는 전쟁에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6. 군사적 전략과 조직력
    • 농업 사회는 조직화된 군사력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전투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제공했다.
    • 대규모 전투에서는 조직력과 보급의 중요성이 컸으며, 농업 사회는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농업과 전쟁의 연관성

농업의 도입과 발전은 결국 군사적 힘의 증대로 이어졌다. 다음은 농업과 전쟁의 주요 연관성을 요약한 내용이다:

  • 식량 생산과 군사력
    • 식량 생산은 직접적으로 인구 증가를 촉진하며, 이는 더 많은 전사를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 비축된 식량은 전쟁 기간 동안 지속적인 전투력을 유지하게 한다.
  • 가축의 이용
    • 가축은 고기, 젖, 비료, 그리고 쟁기와 같은 농기구를 끄는 데 사용되어 농업 생산성을 높였다.
    • 가축의 비료는 작물 생산량을 증대시키며, 이는 더욱 많은 식량을 제공한다.
  • 정주 생활의 장점
    • 정주 생활은 인구 밀도를 높이며, 이는 사회 조직과 방어 체계를 강화한다.
    • 정주 생활은 산아 간격을 단축시켜 인구를 더욱 빠르게 증가시킨다.
  • 병원균의 이점
    • 농업 사회는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게 되며, 이는 전쟁에서 중요한 무기로 작용한다.
  • 전문화와 기술 발전
    • 농업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전문화가 가능하며, 이는 군사력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다.
    • 무기 제작과 군사 전략의 발전은 농업 사회의 전투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착 생활의 장점과 영향

  1. 인구 증가
    정착 생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 인구 증가가 제한된 이유는 이동과 식량 확보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수렵 채집민들은 이동하면서 식량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출산 간격이 길어지고 산아 간격이 늘어나는 등 인구 밀도가 낮았습니다. 반면,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하고, 어린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부담이 줄어들면서 출산율이 증가했습니다. 농경민 사회에서는 산아 간격이 약 2년으로 단축되었으며, 이는 인구 밀도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2. 식량 저장
    정착 생활의 또 다른 중요한 장점은 식량을 저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렵 채집민들은 이동하는 동안 식량을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할 경우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반면, 정착 생활을 통해 농경민들은 잉여 식량을 저장하고 이를 미래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상 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하며, 식량 저장이 가능해짐에 따라 전업 식 전문가나 정치적 엘리트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3. 전문화와 사회 구조의 변화
    정착 생활로 인하여 식량을 저장하고 비축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 내에서 다양한 전문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모든 인구가 식량 확보에 직접 참여해야 했으나, 농경 사회에서는 잉여 식량을 통해 전문적인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왕, 관료, 전업 군인, 사제, 금속 기술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정치적 엘리트**: 식량 저장이 가능해짐에 따라 정치적 엘리트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식량을 통제하고 조세를 징수했습니다. 이는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계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 전문 직업**: 군사, 행정, 기술 등 다양한 전문 직업군이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복 전쟁에서 전업 군인들은 지속적인 군사 활동을 통해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정복 활동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4. 기술과 문화의 발전
    • 의류와 섬유**: 농작물에서는 목화, 아마, 대마 등의 섬유 작물이 개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의류, 담요, 그물, 끈 등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 동물성 섬유**: 가축화된 동물들(예: 양, 염소, 라마, 알파카 등)에서 얻은 털과 명주실은 의류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 기술 재료**: 가축의 뼈와 가죽은 야금술이 발달하기 전 중요한 도구와 유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가죽은 무두질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호리병 박은 그릇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정착 생활은 인류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축화와 작물화는 식량 생산의 효율성을 높였고, 인구 증가와 전문화된 사회 구조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저장된 식량은 전쟁과 정치적 활동에 중요한 자원이 되었으며, 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농경민 사회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독립적인 가축화, 작물화 발원지
지역작물화가축화가축화 및 작물화가 입증된 가장 빠른 연대
서남아시아밀, 완두콩, 올리브양, 염소BC 8500년
중국벼, 기장돼지, 누에BC 7500년 이전
중앙아메리카옥수수, 잠두류, 호박칠면조BC 3500년 이전
안데스산맥 및 아마존 강 유역감자, 마니오크라마, 기니피그BC 3500년 이전
미국 동부해바라기, 명아주없음BC 2500년
사헬 지대수수, 아프리카벼뿔닭BC 5000년 이전
열대 서아프리카아프리카 마류, 기름야자없음BC 3000년 이전
에티오피아커피, 테프없음?
뉴기니사탕수수, 바나나없음BC 7000년?
다른 곳에서 창시된 작물이 도착하면서 가축화, 작물화가 시작된 지역
지역작물화가축화가축화 및 작물화가 입증된 가장 빠른 연대
서유럽양귀비, 귀리없음BC 6000~3500년
인더스 강 유역참깨, 가지인도소BC 7000년
이집트무화과, 금방동사니당나귀, 고양이BC 6000년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혁신적 역할

가축화와 작물화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역할은 육상 운송의 혁신과 군사적 이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 사회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육상 운송의 혁신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19세기 철도가 개발되기 전까지 육상 운송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농작물과 가축화된 동물 이전에는 육지에서의 주요 운송 수단은 인간의 힘에 의존했습니다. 대형 포유류는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 말**: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장거리 운송의 주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당나귀**: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 야크**: 중앙아시아와 티베트 지역에서 활용되었습니다.
  • 순록**: 북극 지방에서 썰매를 끌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중앙아시아, 안데스 등지에서 짐을 나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 라마**: 주로 안데스 지역에서 활용되었습니다.

이들 동물은 사람과 물자를 대량으로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는 사회적, 경제적 혁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2. 군사적 역할

가축화된 동물들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말은 군사적 혁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고대 전쟁에서의 말**: 말은 전차를 끌거나 군사적 이동을 신속하게 하여 전쟁 양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B.C. 1800년경에는 말이 끄는 전차가 근동과 지중해 연안, 중국 등지에서 전쟁의 양상을 혁신시켰습니다.
  • 중세와 근세의 말**: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면서 말의 군사적 역할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훈족과 몽골 제국의 정복 활동은 말의 군사적 역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가축화된 동물과 병원균의 관계

가축화된 동물들이 병원균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은 동물들 사이에서 발생한 병원균이 인간에게 전파된 결과입니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새로운 병원균의 진화와 확산에 기여하였고, 이는 나중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원주민을 정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가 정복 전쟁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유라시아의 말이었다. 고대 전쟁에서 말의 군사적 역할은 지프 나셔먼 탱크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3장에서 언급했듯이 말이 있었기 때문에 코르테스와 피사로는 적은 수의 모험가들을 이끌고 아즈텍 및 잉카제국을 전복시킬 수 있었다. 그보다 휠씬 오래전(B.c. 400년경).
안장도 없이 말을 타던 시대에도 말은 아마 인도유럽 어족이 우크라 이나에서 서쪽으로 팽창한 배경이 된 군사적 요소였을 것이다. 그언 어들은 결국 바스크어를 제외한 초기 서유럽의 언어들을 모조리 대 체하게 되었다. 그 이후 말에 멍에를 써위 마차를 비롯한 탈것에 연결 시키기 시작했을 때. B.C. 1800년경에 발명된 말이 끄는 전차 도 역시 근동 , 지중해 연안. 중국 등의 전쟁 양상을 혁신시겼다. 예를 들자면 B.C. 1674년 말 덕택에 이방인인 힉소스인(동방에서 온 유목 민족)이 당시 말이 없었던 이집트를 정복하여 잠시나마 파라오로 군 림하기도 했었다.

다시 그 이후에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었을 때는 훈족을 비롯한 아 시아 스텝 지대의 여러 민족들이 말 덕분에 로마제국과 그 뒤를 이은 국가들을 차례로 위험할 수 있었다. 그 영향은 A.D. 13세기와 14세 기해 몽골이 아시아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면서 절정에 달 *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트럭과 탱크가 도입되면서 마침내 말을 대신하여 전시의 신속한 운송 수단이나 공격용 탈것으로서의 전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단봉낙타와 쌍봉나타도 각 자의 지리적 범위 안에서 말과 유사한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상 의모든 실례에서 가축화된 말(또는 낙타)을 가진 민족이나 그것을 이용 하는 더 나은 방법을 개발한 민족들은 그렇지 못한 민족들에 비하여 막강한 군사적 이점을 누렸다.

고대의 가축화된 대형 초식 포유류 14종
종류야생 조상 및 현재 분포 지역
주요 5종
1. 양서중앙아시아의 아시아산 무플론. 현재 전 세계에 분포
2. 염소서아시아의 비조르염소. 현재 전 세계 분포
3. 소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에 분포되었으나 멸종된 오록스. 현재 전 세계 분포
4. 돼지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에 분포해 있던 멧돼지. 현재 전 세계 분포. 고대 14종 중에서 다른 13종은 순수한 초식성에 가깝지만 돼지는 사실상 잡식성이다.
5. 말지금은 멸종된 러시아 남부의 야생마. 동일 종의 다른 아종인 몽골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야생 상태로 남아 있다. 현재 전 세계 분포.
기타 9종
6. 단봉낙타(아라비아낙타)아라비아와 인근 지역에 야생 조상이 살았으나 지금은 멸종되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야생 상태로 분포하고 있지만 대체로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에 제한적으로 분포.
7. 쌍봉낙타(박트리아낙타)중앙아시아에 야생 조상이 살았으나 지금은 멸증되었다. 지금도 대체로 중앙아시아에 제한적으로 분포.
8. 라마와 알파카동일한 종에서 분기한 것으로 보인다. 안데스의 구아나코가 야생 조상. 지금도 대체로 안데스에 제한적으로 분포하지만 일부는 북아메리카에서 짐 싣는 동물로 사육되고 있다.
9. 당나귀북아프리카의 아프리카산 야생 당나귀가 야생 조상. 서남아시아 인근 지역에도 분포했을 기능성이 있다. 가축화된 후에는 원래 북아프리카와 서유라시아에 제한되어 있었으나 그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이용되었다.
10. 순록북유라시아의 순록이 야생 조상. 가축화된 후에도 북유라시아에 제한되어 있었으나 현재 일부는 알래스카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11. 물소야생 조상은 서남아시아에서 살았다. 지금도 주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축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브라질에서도 많이 이용되며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일부는 야생 상태로 돌아갔다.
12. 야크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의 야생 야크. 가축화된 후에도 그 지역에 제한적으로 분포.
13. 발리소동남아시아의 반텡(오록스의 친척). 가축화된 후에도 그 지역에 제한적으로 분포
14. 가얄인도 및 미안마의 인도들소(역시 오록스의 친척). 가축화된 후에도 그 지역에 제한적으로 분포

야생 동물과 애완 동물

애완 동물의 역사적 배경

애완 동물은 가축화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야생 동물들이 애완 동물로 길들여졌지만, 이러한 동물들 중 극히 일부만이 최종적으로 가축화되었습니다.

  • 뉴기니**: 다양한 야생 동물들이 애완용으로 기르졌습니다. 예를 들어, 캥거루, 주머니쥐, 딱새와 물수리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동물들은 종종 잡아먹히기도 했습니다.
  • 고대 이집트**: 발굽 있는 포유류, 두루미, 기린, 하이에나 등이 길들여졌습니다.
  • 로마 시대**: 아프리카코끼리와 같은 대형 동물도 길들여졌습니다.
  • 아이누족**: 유럽산 불곰의 새끼를 잡아 길들이고 기르다가 의식의 일환으로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예시들은 가축화가 아닌 애완 동물로서 길들여진 동물들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줍니다.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 시기

가축화의 시간적 배경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는 기원전 8000~2500년경에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초기 농경과 목축 사회가 형성된 이후 몇 천 년 동안 이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 초기 가축화**: 양, 염소, 돼지 등의 동물들이 먼저 가축화되었습니다.
  • 후기 가축화**: 낙타류 등은 더 나중에 가축화되었습니다.

기원전 2500년 이후에는 새로운 주요 가축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소형 포유류(예: 토끼, 햄스터 등)의 가축화는 훨씬 나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가축화에 적합한 종의 선택

  • 대형 포유류의 시험**: 전 세계의 대형 포유류 148종이 가축화의 시험을 거쳤으며, 몇 종만이 성공적으로 가축화되었습니다.
  • 적합성**: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가 4500년 전에 거의 끝났다는 것은, 이미 그 시점까지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들이 선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독립적 가축화

같은 종의 동물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된 경우도 있습니다:

  • 소**: 인도,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 이리**: 남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되었습니다.
  • 돼지**: 중국과 서유라시아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들이 다양한 인간 사회에서 동시에 주목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론

가축화는 인류의 생활 방식과 사회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애완 동물로서 길들여진 동물들이 가축화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며,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는 기원전 8000~2500년경에 이루어졌습니다.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들은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은 인류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초 대형 포유류 가축화의 대략적 연대
연대 (B.C.)장소
10000년서남아시아, 중국, 북아메리카
8000년서남아시아
염소8000년서남아시아
돼지8000년중국, 서남아시아
6000년서남아시아, 인도, 북아프리카(?)
4000년우크라이나
당나귀4000년이집트
물소4000년중국(?)
라마/알파카3500년안데스
쌍봉낙타2500년중앙아시아
단봉낙타2500년아라비아
순록아직 확실한 증거 없음
야크
인도물소
반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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