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 발췌 및 정리2
제8장 샤마니즘과 우주론
세 우주역(宇宙域)과 세계의 기둥
샤만이 지니는 최고의 기술은 하나의 우주역에서 다른 우주역으로, 즉 이 세계에서 천상계로 혹은 지하계로 넘어가는 능력이다. 샤만은 하나의 평면을 돌파하는 비법을 알고 있으며, 이 우주역과 우주역 사이의 교통은 우주의 구조가 교통에 적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우주가 하나의 중심축에 꿰인 세 켜, 즉 천상, 지상, 지하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이 세 우주역이 하나의 중심축에 연결되어 있어, 우주역 간에 서로 교통이 가능하다는 관념을 설명하는 상징체계는 아주 복잡한데다 모순 또한 없지 않다.
이 상징체계가 복잡하고 모순투성이인 이유는 이 체계가 “역사적” 산물이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보다 근대적인 우주론적 상징체계에 오염되어 왔고, 새로운 체계의 영향을 받아 수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도식을 추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우주에는 세 개의 우주역이 있으며, 이 세 우주역은 중앙축에 연결되어 있어 상호 건너다닐 수 있다는 도식이다. 이 중심축은 ‘입구’ 혹은 ‘구멍’을 관통하고 있으며,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사자들이 지하계로 내려갈 때 지나는 관문이 바로 이 구멍이다. 접신 상태에 든 샤만의 영혼이 천상계 여행 때 날아 들어가는 통로, 지하계 여행 때 내려가는 통로도 이 구멍이다.
이 우주의 경역(境域) 분포 상태의 실례를 인용하기 전에, 여기에 대한 기본적인 소견을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중심’의 상징체계는 반드시 우주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거룩한 공간, 즉 성(聖)이 현현하는 장소가 있었다. 이 곳은 현세적인 곳이 아니라 다른 곳, 대개의 경우 천상에서 기인한 리얼리티(혹은 힘, 형상 등)의 발현 현장으로, 이러한 공간에는 반드시 ‘중심’ 혹은 평면 돌파를 가능하게 하는 장소가 있었다. 이 ‘중심’의 사상은 일종의 초인간적인 존재에 의한 신성한 공간 체험에서 유래한다. 즉, 바로 이 지점을 통해 무언가가 위에서 (혹은 아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이 신성한 존재의 나타남이 이후에 평면 돌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터키-타타르 인은 하늘을 천막으로 상상하며, 은하수를 ‘재봉선(裁縫線)’, 별을 천막의 천장에 난 채광 ‘구멍’으로 본다. 야쿠트 족에 따르면 별들은 ‘세상의 창’으로, 각 천상 권역(권역은 모두 아홉 개인 것이 보통이나 때로는 12개, 다섯 개 혹은 일곱 개인 경우도 있다) 사이의 통풍을 위해 뚫려 있다. 신들은 가끔 이 천막을 열고 지상을 바라보며 유성의 수를 센다. 하늘은 뚜껑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이 뚜껑은 세상을 딱 맞게 덮지 않아 그 틈으로 강풍이 불어들어오기도 한다. 영웅들이나 특권을 부여받은 인간들은 이 틈을 통해 지상을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 한가운데 북극성은 지주(支柱)처럼 천공이라는 천막을 붙들고 서 있으며, 사모예드 인은 이 별을 ‘하늘의 거멀쇠’, 추크치 인과 코리야크 인은 ‘거멀쇠 별’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징과 표현법은 랩 인, 핀 인(Finn), 에스토니아 인(Estonian)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터키-알타이 인(Turko-Altaian)은 북극성을 기둥으로 여기며, 몽고인, 칼미크 인(Kalmyk), 부르야트 인은 이것을 ‘금기둥’, 키르기츠 인, 바쉬키르 인(Bashkir), 시베리아 타타르 인은 ‘쇠 기둥’, 텔레우트 인은 ‘태양의 기둥’으로 여긴다. 북극성과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된 별들에게도 보조적인 신화적 이미지가 부여되어 있으며, 부르야트 인은 이 별들을 말떼, 북극성(세계의 기둥)을 이 말떼를 묶어두는 말뚝으로 본다.
이러한 우주관은 인류가 사는 소우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징체계를 보면, 세계의 축이 집을 떠받치는 기둥 혹은 ‘세계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독립된 말뚝으로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의 경우, 하늘의 기둥은 그들의 주거 한가운데에 있는 기둥과 동일시된다. 알타이 계 타타르 인, 부르야트 인, 소요트 인은 천막의 지주를 하늘의 기둥과 동일시한다. 소요트 인은 천막 위로 솟아오르도록 기둥을 세우고 그 꼭대기를 푸른 천, 흰 천, 노란 천으로 장식한다. 이 세 가지 색깔은 각각 세 천상계의 색깔을 나타내며, 이들은 이 기둥을 신성시하여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긴다. 이 기둥 아래에는 제물의 상석(床石) 노릇을 하는 조그만 돌 제단이 있다.
북극 및 북아메리카 미개 민족의 주거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중앙에 기둥이 서 있다. 사모예드 인과 아이누 인(Ainu), 북부 및 중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민족들(마이두 족, 동부 포모 족, 파트윈 족), 알곤킨 족의 주거지에는 이러한 기둥이 있으며, 구성원들은 이 기둥 아래에서 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올린다. 그 까닭은 이 기둥이 천상의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길을 열기 때문이다.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소우주적 상징체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주거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에 (중앙에 기둥이 있는 원추형 지붕의 오두막에서 천막으로) 기둥의 신화-종교적 기능은, 연기가 빠져 나가도록 만들어 놓은 천장의 구멍으로 바뀌었다. 오스티야크 인의 경우, 이 구멍은 ‘천상의 집’에 있는 같은 모양의 구멍에 해당되며, 추크치 인은 이 구멍을 북극성에 의해 천상의 궁륭형 천장에 난 구멍과 동일시한다. 오스티야크 인 역시 ‘천상의 집에 있는 황금 굴뚝’, ‘천신(天神)의 일곱 굴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알타이 인도 샤만이 이 ‘굴뚝’을 통해 한 우주 권역에서 다른 우주 권역으로 드나든다고 믿는다. 추크치 인은 북극성을 ‘천상의 구멍’으로 믿으며, 천상, 지상, 지하의 삼계(三界) 역시 이와 유사한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어 샤만과 신화적 영웅들이 천상과 교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알타이 인에게 천상으로 가는 길은 북극성을 지나게 되어 있으며, 부르야트 인의 우데시 부르칸(udesi-burkhan)은 사람이 문을 열듯이 샤만에게 그 길을 열어준다.
이러한 상징체계가 극북지방이나 북아시아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집 중앙에 있는 신성한 기둥은, 함 족 계열의 갈라 인 (Galla) 및 하디아(Hadia) 유목민들, 함 족 계열의 난디 인(Nandi) 그리고 아샘 지역의 카시 인(Khasi)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 기둥 아래에 희생제물을 차리며, 천상의 신들에게 우유를 바침으로써 희생제를 갈음하거나 산 제물을 죽여 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세계의 기둥이 집과는 무관한 장소를 상징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 게르만 인(772년 샤를마뉴가 파괴한 우상인 이르민술(Irminsul)), 랩 인, 우그르 인의 무속에서 이런 예를 찾을 수 있으며, 오스티야크 인은 이 제의적인 기둥을 ‘마을 한복판에 있는 권능의 기둥’이라 부른다. 창갈라의 오스티야크 인은 이 기둥을 ‘쇠기둥 인간’이라 이름하고, 기도할 때는 ‘사나이’ 혹은 ‘아버지’라 부르며 산 제물을 바친다. 다뉴브 족과 칼레도니아 인의 주거지에도 ‘세계의 기둥’을 신화적 중심으로 동일시하는 상징체계가 남아 있다.
세계의 기둥이라는 상징체계는 이집트, 인도,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등 보다 진보한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빌로니아 인의 경우 하늘과 땅의 연결 고리 (우주의 산 혹은 모사(模寫)한 지구라트, 사원, 왕도(王都), 궁전으로 상징되는) 가 때로는 천상의 원주(圓柱)로 상상되고는 했다. 비슷한 관념은 나무, 다리, 계단 같은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복합체가, 우리가 “중심”의 상징이라고 불러온 하나의 상징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중심의 상징은, 대부분의 “원시” 문화에서도 산견(散見)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왔던 것인 듯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 즉 세 권역을 서로 교통한다는 우주론적 관념에서 본다면 샤만 고유의 체험이 신비 체험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우주론적 관념이 시베리아나 중앙 아시아 샤마니즘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샤마니즘의 이데올로기에만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관념은, 천상계와의 직접적인 교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신앙과 관련되는데, 이러한 신앙은 세계 어느곳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교통은 대우주적 차원에서는 축(나무, 산 기둥 등)을 통해서 표현되고 소우주적 차원에서는 집 중앙의 기둥이나 천막 천장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표현된다. 즉, 인간의 모든 주거지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열려 있으며, 제단이나 천막, 집은 모든 차원에서의 돌파구, 따라서 천상으로의 상승을 가능케 하는 매개물임을 뜻하는 것이다.
고대 문화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는 일반적으로 천상의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데 사용되는 것이지, 인간의 승천을 위한 통로는 아니다. 오로지 샤만만이 “중앙의 구멍”을 통해 인간을 승천시킬 방법을 알고 있으며, 샤만만이 우주적-신학적 관념을 구체적 신비 체험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평범한 북아시아인의 종교 생활과 북아시아 샤만의 종교 체험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샤만의 종교 체험은 개인적이며 접신적 체험이다. 모듬살이의 다른 구성원에게는 이러한 체험이 우주론적 상징성에 지나지 않지만, 샤만들(혹은 영웅들)에게는 이것이 대단히 신비스러운 여정(旅程)인 것이다. 여느 구성원들에게 “세계의 중심”은 기도와 제물을 천상의 신들에게 보내는 장소이지만, 샤만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천상계로 이륙하는 마당이다. 이 때문에 세 우주 권역 간의 현실적 교통은 샤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 쉽사리 천상으로 올라가 신들과 가까이 사귀던 저 낙원시대의 신화를 인용한 바 있다. 주거의 우주론적 상징체계와 샤만의 비상 체험은 바로 이러한 고대신화가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된다. 태초에 인간과 신들 사이에 존재하던 용이한 교통체계가 무너진 뒤, 특권을 가진 어떤 존재(샤만)가, 여느 인간을 위하여 천상계와의 관계를 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샤만에게는 “중앙의 구멍”이 옛날과 마찬가지로 천상계로 비상하는 통로이지만, 여느 사람들에게는 신들에게 제물을 보내는 통로로만 이용된다. 그러니까 샤만은 이러한 접신 체험의 능력으로 인해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샤만은 그가 속한 종족의 우주관이나 신화나 신학을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샤만은 오로지 이러한 것을 내면화하고 “체험”하고 스스로의 접신 여행을 위한 여정에 이것을 이용해온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주산(Cosmic Mountain)
우주산(Cosmic Mountain)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세계의 중심”의 또 다른 신화적 이미지다.
알타이 타타르인은 바이 윌갠이 천상의 한가운데에 있는 황금산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믿는다. 아바칸 타타르인은 이 산을 “철(鐵)의 산“이라고 부른다.
몽골인, 부르야트인, 칼미크인은 이 산을 숨부르(Sumbur), 수무르(Sumur) 혹은 수메르(Sumer)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명칭은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임이 분명하다(인도 인들은 이 산을 메루 산[Mount Meru]이라고 한다).
몽골인과 칼미크인은 이 산이 3층 또는 4층으로, 시베리아 타타르인은 7층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야쿠트인의 샤만이 접신 여행 중 오르는 산도 7층으로 되어 있으며, 이 산의 꼭대기는 북극성, 즉 “하늘의 배꼽”에 닿아 있다. 부르야트 인은 북극성이 이 산의 꼭대기에 붙어 있다고 믿는다.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우주산 관념을 반드시 오리엔트적 발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우리가 앞에서 보아왔듯이, “중심”의 상징체계는 고(古) 오리엔트 문명의 발생에 앞서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 및 북아시아의 여러 민족들 (이들이 “세계의 중심” 및 우주축의 이미지를 알고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의 고대전승은, 그 원류가 메소포타미아(이란을 통해 전파된)에 있든 인도(라마 교를 통해 전파된)에 있든, 끊임없이 오리엔트의 종교적 관념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용되어왔다. 인도의 우주론에 따르면 메루 산은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고 북극성은 그 위에서 빛난다. 인도의 신화가, 신들이 이 우주산(=세계의 축)을 잡고 원초의 대양(大洋)을 휘젓자 여기에서 우주가 탄생했다고 주장하듯이 칼미크의 신화도 신들이 수메르 산을 작대기 삼아 대양을 저어 해와 달, 별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앙 아시아의 또 다른 신화에도 인도적 요소가 혼입된 흔적이 엿보인다. 가령 몽고의 신 오치르바니 (Ochirvani=인도의 Indra)가 독수리인 가리데(Garide=인도의 Gar-uda)의 모습을 하고, 원초의 바다에 사는 뱀인 로순(Losun)을 잡아 수메루 산에 세 바퀴 동여감고 마침내 머리통을 부숴버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란의 하라베레자이티 (Haraberezaiti=Elbruz), 고대 게르만의 히밍 뵈르그(Himingbjorg)가 좋은 예가 되겠지만, 오리엔트와 유럽의 신화를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메소포타미아 인은 이 산이야말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대지의 산”이라고 믿는다. 바빌로니아의 사원이나 신성한 탑의 이름을 들어보면 이러한 이름 역시 우주산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사원이나 신성한 탑을 “집의 산,” “온 대지의 산 중의 산,” “폭풍의 산,” “천상과 지상을 잇는 고리”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구라트는 우주의 산, 우주의 상징이었다. 지구라트의 일곱 개 층은 일곱 개의 현세적 천국(보르시파에 있는 지구라트의 경우) 혹은 세상의 일곱 색깔(우르에 있는 지구라트의 경우)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로부두르의 사원, 즉 진실의 우주상(imago mundi)은 산의 모양으로 지어져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쌓은 산 모양은 인도는 물론이고 몽고 및 동남 아시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중심”의 상징체계 (산, 기둥, 나무, 거인)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정신성의 상징인데도 불구하고 이 상징의 원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 및 인도양 주변국가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타보르 산(Mount Tabor)은 타부르(tabbur), 즉 “배꼽”인 옴팔로스를 뜻하는 듯하다. 팔레스티나 중앙에 있는 게리짐 산 (Mount Gerizim)도 “땅의 배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중심’의 권능이 부여된 산임이 분명하다. 페트루스 코메스토르 (Petrus Comestor)가 채록한 전승에 따르면, 하지(夏至) 때 야곱의 샘 (게리짐 산 가까이에 있는) 근처에 서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코메스토르는, “혹자는 그곳을 일컬어 우리가 사는 땅의 배꼽이라고 한다(Sunt qui dicunt locum illum esse umbilicum terrae nostrae habitabilis)”고 덧붙인다. 고지에 위치한(결국 우주산 꼭대기에 가까이 있는) 팔레스티나 땅은 노아의 홍수 때도 잠기지 않았다. 유대교 경전은 “이스라엘 땅은 노아의 홍수 때도 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골고다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언덕이었다. 그들에게 골고다는 우주산의 꼭대기인 동시에 아담이 창조되고 아담이 묻힌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구세주의 피는 십자가 바로 밑에 묻혀 있던 아담의 해골에 정확하게 떨어졌고, 그래서 아담의 원죄가 사함을 얻은 것이다.
이 “중심”의 상징체계는 고대(“미개”) 문화와 동양의 위대한 문명사에 자주 등장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많은 사람들은 궁전이나 왕도 심지어는 여염집까지도 우주산의 꼭대기에 있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믿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상징체계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궁전이나 왕도나 여염집이 있는 “세계의 중심”은 우주적 평면의 돌파구, 바꾸어 말하면 천상과의 교통이 가능한 장소에 있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것이다.
장차 샤먼이 될 자가 이 무병(巫病)중에 오르는 산, 후일 샤만이 되어 접신 여행중에 오르게 되는 산이 바로 이 우주산이다. 우주산 오르기는 “세계의 중심”으로의 여행을 상징한다. 앞에서 보아왔듯이, 이 “중심”은 갖가지 상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가령 이것은 인간의 주거 구조에서도 상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우주산에 오르는 것은 샤만이나 영웅들뿐이다. 무의 (巫儀)중의 샤만은 외관상으로는 제의적인 나무를 오르는 데 불과하지만 그의 영혼은 세계수를 올라 하늘의 가장높은 곳에 있는 우주의 꼭대기에 이른다. 그 까닭은, 세계수의 상징체계는 중심의 산을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상징체계가 일치하는 때가 있기는 하나 여느 때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두 상징이 우주축(세계의 기둥)의 신화적 계통에서 발전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세계수
세계수(Cosmic Tree)는 샤마니즘과 우주론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우주와 생명의 연결을 나타낸다. 이 상징체계는 중앙 아시아와 북아시아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견되며, 샤먼의 의례와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수의 상징과 역할
- 우주수로 만든 무고: 샤먼은 우주수로 자신의 무고를 만든다.
- 자작나무의 상징: 의례 때 자작나무를 오름으로써 우주수의 꼭대기에 오르는 행위를 대신한다.
- 천막 안팎의 나무: 샤먼의 천막 안팎에는 우주수를 상징하는 나무가 세워져 있다.
우주론적 의미
- 세계의 중심: 세계수는 지구의 중심, 즉 ‘움빌리쿠스(umbilicus: 배꼽)’에 위치하며, 꼭대기는 바이 윌갠의 궁전에 닿아 있다.
아바칸 타타르 인의 전설에 따르면 철의 산꼭대기에는 일곱 개의 가지가 돋은 흰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몽고인은 우주산을, 중앙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사면 피라미드로 상상한다. 몽고인들은 신들이, 세계의 기둥에 그렇게 하듯이, 바로 이 나무에 말을 맨다고 믿는다. - 우주의 연결: 나무는 우주의 세 권역(하늘, 지상, 저승)을 연결한다. 예를 들어, 바시유간 오스티야크인은 나무의 가지가 하늘에 닿아 있고 뿌리는 저승에 닿아 있다고 믿는다.
시베리아 타타르 인에 따르면, 천상의 나무(Celestial Tree)와 아주 똑같은 나무 한 그루가 하계의 저승에서 자라고 있다. 뿌리가 아홉 가닥인 전나무(혹은 아홉 그루의 전나무)가 죽은자의 왕인 이를레 칸의 궁전 앞에서 자라고 있는데, 사자의 왕과 그 아들들은 바로 이 나무의 둥치에다 말을 맨다. ~몽고인은 잠부(Zambu)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의 뿌리는 수메르 산 바닥을 꿰뚫고 있고 수관은 수메르 산 정상 을 뒤덮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몽고인의 신들(Tengeri)은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고 우주산의 골짜기에 숨어 사는 악마들(asuras)은 그런 신들의 모습을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상징적 이미지
- 생명의 나무: 세계수는 끊임없이 재생을 반복하는 우주적 생명의 무한한 원천을 상징하며, 거룩한 것들을 갈무리하는 신성한 저장고이다.
- 생명과 불멸: 세계수는 생명의 나무이자 영원불멸의 나무로, 창조, 다산, 입문, 최종적으로는 절대적 실재 및 불멸성과 관련되어 있다.
무수한 유사 신화 및 보완적 상징(여성, 원천, 우유, 동물, 과실 등)으로 분식되어 있어도 결국 우주수 자체는 생명의 저장소, 운명의 지배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영향과 신화적 모티프
- 중앙 및 북아시아의 우주론: 동남아시아가 중앙 아시아와 북아시아 민족의 우주론에 영향을 미쳐왔다.
- 운명의 서: 영혼의 저장소 혹은 ‘운명의 서’로서의 우주수 관념은 보다 진보된 문명권으로부터 이입 된 것으로 보인다.
- 기원의 신화: 야쿠트인은 “세상의 황금 배꼽”에 가지가 여덟 개인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믿으며, 이는 원초적인 낙원을 나타낸다. 이 낙원은, 최초의 남성이 태어나, 나무 둥치에서 윗몸만 내민 여성의 젖을 먹고 자라는 그런 땅이다. 하르바가 지적하고 있듯이, 북시베리아의 열악한 기후대에 사는 야쿠트 인이 이런 신화를 발명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신화는 인도, 이란, 고대 동방의 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 인도 신화의 경우 최초의 남성인 야마(Yama)가 기적의 나무 곁에서 신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란 신화의 경우는 이마(Yima)가 우주산에서 인간과 짐승들에게 불사의 권능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화적 상징의 확산
- 우주수와 새: 골디인, 돌간인, 퉁구스인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어린 아기의 영혼이 우주수의 가지에 새처럼 앉아 있다가 샤먼의 눈에 들어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믿는다.
- 우주론적 도식: 나무-새(독수리) 혹은, 꼭대기에는 새가 앉아 있고 뿌리에는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나무는 중앙 아시아와 고대 게르만인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체계는 오리엔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징체계는 유사 이전의 기념비나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비의 수: 7과 9
숫자 7과 9는 고대부터 많은 문화와 신화 속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숫자들은 종종 우주론적 구조와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샤마니즘과 세계수에 깊은 연관을 가진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한 7이라는 숫자는 일곱 행성이 박힌 하늘과 연결되며, 중앙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문화로 전파되었다. 반면 9라는 숫자는 3의 배수로서 더 오래된 종교적 가치를 지니며,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진다. 이러한 상징들은 샤마니즘의 의례와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주와 생명의 연결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다.
7의 상징성과 기원
- 메소포타미아 기원: 일곱 개의 가지가 있는 우주수가 일곱 행성이 박힌 하늘과 동일시되는 믿음은 메소포타미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 천상의 일곱 권역: 천상의 일곱 권역(=일곱 행성이 박힌 하늘)을 가로지르는 관념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중앙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 보편적 관념: 그러나 우주수와 세계의 축을 통한 천계상승이라는 아이디어는 훨씬 더 오래된 보편적 관념이다.
9의 상징성과 깊은 역사
- 3의 종교적 가치: 3이라는 수는 세 우주 권역을 상징하며, 종교적 가치가 크다.
- 9의 신비로움: 9는 3의 세 배인 3X3으로, 고대부터 중요한 신비로운 수로 여겨져 왔다.
- 유서 깊은 상징체계: 9라는 숫자의 상징체계는 메소포타미아의 7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샤마니즘에서의 7과 9
- 알타이 샤만: 알타이 샤만은 일곱 개 혹은 아홉 개의 눈금(tapty)이 새겨진 나무나 기둥을 오른다. 이는 일곱 혹은 아홉 개의 천계(天階)를 상징한다.
- 푸닥(pudak): 샤만이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로, 샤먼이 들어가야 하는 아홉 천계를 의미한다.
인도-유럽 어족들의 샤머니즘 이데올로기와 기술
고대 게르만인의 접신 기술
오딘과 샤만적 특색
고대 게르만인의 종교와 신화에서 북아시아 샤머니즘의 개념에 견주어지는 요소는 특히 오딘의 이야기에서 두드러진다. 오딘은 주술사이자 군주로서, 룬 문자(rune)의 비밀을 얻기 위해 아홉 밤낮을 나무에 매달린다. 회플러 (Otto Höfler) 같은 학자는 이를 시베리아 샤만의 나무 오르기 입문의례와 비슷하다고 한다. 오딘이 매달린 나무는 세계수 익드라실(Yggdrasil)이며, “익(Ygg:오딘)이 타는 말(馬)”을 의미한다. 북유럽의 전승에서는 교수대를 “목매달린 자의 말(hanged man’s horse)”이라고 부르며, 게르만 족의 입문의례에서 후보자를 상징적으로 “목매다는” 의례가 존재한다. 이러한 관습에 관한 기록은 다른 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오딘 역시 자기 말을 익드라실에다 맨다. 이 신화 테마가 북아시아와 중앙 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슬라이프니르와 샤만의 말
오딘의 말 슬라이프니르(Sleipnir)는 발굽이 여덟 개인 말로, 샤만의 상징적 동물이다. 슬라이프니르는 오딘 및 다른 신들(가령 헤르모드르(Herm6dhr) 같은)을 명계로 태우고 가는 역할을 한다. 이 여덟 발굽의 말은 시베리아인과 무리아(Muria)인을 비롯한 여러 종족의 샤만 전승에서 나타나며, 샤만의 접신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슬라이프니르는 남성 사회의 비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각脚목마의 신화적 원형으로 여겨지며, 이는 샤머니즘의 영역을 넘어서는 주술-종교적 현상이다.
오딘의 변신 능력
스노리(Snorri)는 오딘의 변신 능력에 대해 기록하면서, 오딘이 잠자는 듯이 누워 있다가 새, 들짐승, 물고기, 용으로 둔갑하여 먼 곳으로 간다고 한다. 이는 샤만이 동물로 변신하는 것과 유사하다. 샤만들은 종종 소나 독수리로 변신하여 싸우며, 북유럽 전승에서도 주술사들이 물개로 변신해 싸우는 이야기가 있다. 오딘이 접신 중일 때와 같이, 싸우는 동안 주술사들의 육신에는 영혼이 없다. 물론 이러한 신앙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샤마니즘이라고 할 수 없는 전승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은 반드시 시베리아 샤마니즘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보호영신과 샤만적 전승
스칸디나비아의 신앙 체계에는 영신이 동물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샤만의 눈에만 보인다는 전승이 있다. 이는 샤만적 관념을 상기시킨다. 오딘의 두 까마귀 후긴(Huginn, “생각”)과 무닌(Muninn, “기억”)은 샤만적 요소를 가진다. 이 까마귀들은 오딘이 세계의 네 구석으로 보낸 새 모양의 두 보호영신으로, 고도로 신화화된 형태를 상징한다.
고대 인도의 상승의례
터키-몽고 샤머니즘과 자작나무의 의례적 중요성
터키-몽고의 종교, 특히 샤머니즘에서 자작나무는 중요한 의례적 역할을 한다. 자작나무나 기둥에 새겨진 일곱 또는 아홉 개의 눈금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우주수를 상징하며, 이를 오름으로써 샤만은 최고천에 올라 바이 월갠을 만난다.
고대 인도의 나무 오르기 의례
고대 인도의 바라문 경전에서도 ‘나무를 오르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며, 이는 영적 상승을 상징한다. 석가의 탄생 설화에서도 이러한 상승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중아함경》(Majhima-nikaya)에 따르면, 석가는 태어나는 순간 두 발로 서서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옮겨 놓는다. 흰 일산日傘을 머리 위로 거느린 채 그는 사방을 보고는 황소 우는 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귀한 자, 나는 세계에서 가장 선한자, 나는 세계에서 가장 연장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태어나는 것이니 금후로 나를 대신할 새로운 존재는 없다.” 이 일곱 걸음은 석가를 이 세계의 정점으로 데려다 놓는다. 최고천에 오르기 위해 의례용 자작나무에 새겨진 일곱 개 혹은 아홉 개의 눈금을 타고 오르는 알타이 샤만처럼, 석가도 천상계 7천에 대응하는 일곱 개의 우주 전단계를 상징적으로 뛰어 넘는다.
상징적 천계 상승
여기에서는 고대의 샤만적인(그리고 베다 시대의) 상징적 천계상승의 우주론적 도식이 인도의 지복천년의 형이상학적인 사색의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석가의 일곱 걸음은 베다 시대의 ‘신들의 세계’나 ‘영생’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조건을 초월한 세계를 지향한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귀한 자(aggo’ham asmi Iokassa)”라는 표현은 자신의 초공간성을, “나는 세계에서 가장 연장자(jettho`ham asmi lokssa)”라는 표현은 자신의 초시간성을 의미한다. 이는 우주의 정상에 도달함으로써 석가는 “세계의 중심”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 행위가 이 ‘중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석가는 세계가 시작되던 시대와 동시대인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7천과 9천 개념
《중아함경》에서 언급하는 7천의 개념은 바라문 교에서 기원하며, 이는 알타이와 시베리아의 우주론적 개념에 영향을 끼친 바빌로니아 우주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심오하게 “내면화”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불교 역시 9천의 우주론적 도식을 알고 있었다. 처음의 4천은 즈하나스(jhanas), 다음의 4천은 사타바사스(sattavasas), 마지막 1천은 니르바나(Nirvana)를 상징한다. 각 천계에는 불교의 여러 신들이 투영되어 있으며, 이는 요가적 명상의 단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알타이 샤만에게도 신들과 반신들이 사는 7천 혹은 9천의 천계가 있으며, 여기서 샤만이 천계 상승을 통해 만나 이승의 일을 하소연하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다. 최고천인 9천에는 바이 윌갠이 있다. 물론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상징적인 천계 상승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 도달하는 정신의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탈에 이르는 ‘걸음걸이’이다. 불교의 승려들은 생전에 수행한 요가의 단계에 따라 사후에 거기에 걸맞는 천계에 들지만, 석가는 최고천인 열반에 드는 것으로 보인다.
몽고, 한국, 일본
시닝의 몽구르인 종교
중국 북서부인 시닝(Sining) 지역의 몽구르인(Monguor) 종교의 특징은 라마교가 어느정도 혼재해 있는 샤머니즘이라는 것이다. 몽구르인은 중국에서 투젠(T’u-jen)이라고 불리며, 이는 ‘토박이’를 의미한다. 이들의 종교는 라마교가 샤머니즘을 일소하려 했던 몽고인의 종교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몽고인은 라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전통 샤머니즘을 유지하고 있다.
몽고인의 경우, 일찍이 17세기에 라마 교가 샤마니즘을 일소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몽고인은 옛 종교 본래의 특질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역으로 라마 교의 영향을 자기네 것으로 동화시킬 수 있었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남무와 여무는 이 민족의 종교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 샤머니즘의 특성
한(漢) 나라 시대에 이미 샤마니즘이 있는 것으로 기록된 바 있는 한국의 경우, 격(覡: 남무)은 무(巫: 여무)의 옷으로 여장한다. 격의 수는 무의 수보다 휠씬 적다. 한국 샤마니즘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샤마니즘에는 남방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한나라 시대의 샤만 모자에 수사슴 뿔이 있는 것을 보면, 고대 터키의 특징인 수사슴 의례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슴 의례는 수렵 및 유목 문화의 전형적인 의례이다. 이런 문화권에서 여무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현대 한국 샤마니즘에서 여무가 우세한 것은, 전통적 샤마니즘이 쇠퇴의 징후를 보이는 증거이거나 남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증거일 것이다.
일본 샤머니즘의 역사와 현대 의례
역사적 배경과 현대 자료
일본 샤머니즘에 관한 현대의 자료는 나카야마 타로와 호리 이치로의 저작 덕분에 풍부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고대 일본사에 대한 오카 마사오의 대저가 출판되기 전까지는 일본 샤머니즘의 다양한 측면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날 수집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샤머니즘은 북아시아나 시베리아 형의 샤머니즘과는 거리가 멀며, 혼령에의 빙의가 그 핵심입니다. 일본에서 샤만 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일본 여무의 주요 기능
에더(Matthias Eder)에 따르면, 일본 여무의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자의 혼을 불러오기 (시니구치): 여무는 저승으로부터 사자의 혼을 불러옵니다. 이는 ‘사자의 입’이라는 의례입니다.
- 산 사람의 혼을 불러오기 (이키구치): 여무가 멀리 있는 산 사람의 혼을 불러오는 의례입니다. 이를 ‘산 자의 입’이라고 합니다.
- 예언 (카미구치): 여무는 고객의 성공과 실패를 예언합니다. 이 의례는 ‘신의 입’이라 불립니다.
- 병자 치유와 악령 쫓기: 여무는 병자를 고치고 악령을 쫓아내며 종교적 재계를 베풉니다.
- 약 처방 문의: 여무는 자기가 모시는 신에게 특정 병자에게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묻습니다.
- 잃어버린 물건에 관한 정보 제공: 여무는 고객이 잃어버린 물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여무의 훈련과 접신 의례
많은 일본 여무는 배냇장님이며, 여무의 접신은 종종 인위적이고 위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자의 혼이 자기 입을 통해 말하는 동안, 여무는 진주 목걸이나 활을 만지작거립니다. 여무의 교육은 보통 세 살부터 일곱 살 때까지 진행되며, 이는 여무 후보자와 신의 혼인을 통해 완성됩니다.
입문의례 동안 여무 후보자는 극도의 육체적 시련을 겪으며, 이는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의식을 되찾는 것은 ‘탄생’과 동일시되며, 이를 통해 여무는 거듭난 후 신부 옷으로 차려입습니다.
아귀노에르의 연구
에더(Matthias Eder)는 일본 샤머니즘의 기원을 논할 때, 아귀노에르(Charles Haguenauer)의 연구인 『Origines de la civilisation japonaise ; Introduction à l’étude de la préhistoire du Japon (Vol. I, Paris, 1956)』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연구의 첫 번째 권에서는 일본 샤머니즘의 기원을 논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례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Haguenauer의 연구 결과, 고대 일본의 여성 요술사(여무)와 관련된 사례는 알타이 샤머니즘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가령, 고대 일본에서의 여성 요술사 역할이나 기능에 관해서 우리가 알 고 있는 것- 궁정정사()의 편자()가 이를 묵살하고 여요술사의 적수이자 야마토 조정의 의례 집행자인 “미코”만을 다루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으로부터 우리는 여성 요술사가 한국의 무당 ()이나 알타이의 무녀와 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여요술사의 기본적인 기능은 신성한 기둥이나 다른 물건으로 혼을 내리는(오로 스)일, 영혼과 산 자의 매개가 되기 위해 혼을 부르거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이들의 종교적 의례에 신성한 기둥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기둥이라는 일본어()가, 신성한 존재를 세는 데 사용되는 특수한 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추정이 가능하다(Journal asiatique, Paris 1934, p. 122 참조). 그리고 일본의 여요술사가 쓰는 무구 )는 대륙의 동료들이 쓰는 도구와 같다. 가령 북… 방울.. 거울, 카타나(Kata.na 알타이 기원을 지닌 단어) 등의 무구가 지닌, 악마에 대항하는 힘은 일본의 민간전승에서도 다양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다.
알타이 샤마니즘- 배타적으로 남성을 위한 제도- 이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여성적인 종교 문화의 구성요소가 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아귀 노에르의 다음 저서를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칼도 북도 원래 여성의 주술에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도구가 여무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것이 이미 남성 요술사나 샤만의 장식품의 일부였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