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브랜딩과 디지털 아이덴티티 구축하기
개인 브랜딩을 하고 디지털 정체성을 확립하고, 온라인 인지도를 높이고 커뮤니티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맨땅에서 처음부터 전체 인프라를 구축한다는건 재정적 자원이 있다고 해도 쉽게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불확실한 노력에 인생을 바치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도대체 나는 어쩌다가 이런 불확실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노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단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다.
재능, 노력, 환경 중에서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끝없이 노력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지름길도 없고, 요행이나 쉬운 길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평균 이상의 지능이라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집안의 학력도 결코 낮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도 초등학교 때 과학영재교육을 받았고, 고등학교 때는 국어에서 전교1등까지 해본 적도 있다.
비록 전문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니까.
다만 국평오라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평균 이상의 지능이라는 것이 딱히 자랑거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 정도로는 어리석지 않을 뿐이다.
내가 직면한 현실이란, 자의식 과잉과 과도한 야욕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 자기 객관화 부족이 불러온 재앙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현실적인 관점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문과, 예체능, 전문대 졸업생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설령 취업이 된다고 해도,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커리어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확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나?
만약 눈에 띌 만큼의 실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고생을 자처하지 않아도 이미 누군가가 알아보고 스카우트 하지 않았을까?
실력으로만 눈에 띄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만의 정체성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 길마저도 잘 풀리지 않으면 내 인생은 하찮은 일의 연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유년기의 기억을 반추해보자면
나는 과학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었다.
새벽의 차분한 공기와 구름에 비친 여명의 빛줄기는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학과 아름다움을 모두 추구했다.
“공부란 세상의 해상도를 올려주는 행위” 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勉強って「頭の中に知識を詰め込む行為」ではなく「世界の解像度が上がる行為」だと思う。ニュースのBGMだった日経平均株価が意味を持った数字になったり、外国人観光客の会話が聞き取れたり、ただの街路樹が「花の時期を迎えたサルスベリ」になったりする。この「解像度アップ感」を楽しめる人は強い
— トヨマネ|パワポ社長 (@toyomane) December 16, 2020
공부란 ‘머리속에 지식을 쑤셔넣는 행위’ 가 아니라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 라고 생각한다.
뉴스의 배경음악에 불과했던 닛케이 평균 주가가 의미를 지닌 숫자가 되거나
이해할 수 없던 외국인 관광객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거나
단순한 길가의 가로수가 ‘개화 시기를 맞이한 배롱나무(라거슈트루에미)’가 되기도 한다.
이 ‘해상도 업그레이드감’을 즐기는 사람은 강하다.
또한,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학문의 즐거움』에서 이렇게 썼다:
“배우는 일, 그것은 즐겁다. 생각하는 일은 더 즐겁다.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그렇듯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그리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세상의 ‘경이로움’을 알아감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소년시절 나의 모든 것이었다.
지식, 탐구, 발견의 기쁨.
결국 인간은 본능적으로 감정적인 존재이며, 우리는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의 언어에 더 잘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신비로움은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다”라고 말했듯이,
경이로움, 아름다움, 초월성,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불교 철학과 과학에 대한 선호는 지금의 이성과 논리, 사실에 근거한 사고방식의 토양이 되었으리라.
과학, 철학, 예술 – 안다는건 무엇인가?
- 과학과 철학, 예술의 개념을 단순히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 - 그리스 철학이 과학적 사고방식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서양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면서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연결. -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 현대적인 사고방식이 철저하게 그리스 자연철학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강조. - “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찾는 학문이 아니라, 가장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체계다.”
“과학은 결국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작업이다.
철학과 함께 태어났고, 논리적 사고를 통해 발전해왔다.
하지만 철학이 ‘왜?’를 묻는다면, 과학은 ‘어떻게?’를 묻는다.
나는 과학을 통해 세계를 탐구하는 방식을 배웠고,
그것이 결국 디자인이라는 실용적인 영역으로 이어졌다.”
1. 과학: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도구
- 과학은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 나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세상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 하지만 과학은 너무 추상적이었고,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2. 철학: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 철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다.
- 과학과 철학은 원래 하나였고,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
- 나는 철학을 통해 사고의 깊이를 넓혔지만, 실질적인 결과물을 원했다.
3. 예술: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 예술은 과학과 철학이 다룰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 하지만 나는 순수 예술보다, 실용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를 가진 디자인에 더 끌렸다.
4. 디자인: 나의 선택이자 운명
- 디자인은 과학, 철학, 예술이 결합된 분야다.
- 나는 디자인을 단순한 미적 작업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본다.
-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과거의 경험과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였다.
반면에 수학과 영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암산을 잘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수학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단조롭고 기계적인 반복 학습이 고통으로 느껴졌다.
영재 교육 시절 수학적 증명을 직접 하면서 약간의 즐거움을 찾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진정한 열정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지금의 나는 수학의 우아함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아마도 계산기와 ai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한국어를 접하는 환경이 아닌 만큼, 한국어를 배워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영어에 관해서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비트겐슈타인의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뭔가 상황이 달랐을까?
사실은 그렇지도 않을 듯 하다. 나는 여전히 수능영어는 전적으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 학습진도를 놓쳤던 나에게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학창시절 학교와 학원에서 12년 동안 영어를 공부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반면에 군 제대 후 2년간의 독학으로 배운 영어는 바로 토익과 British Council 교재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만큼 즉각적으로 효율적, 직관적, 실질적인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학습에 대한 어려움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또래 친구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스스로를 몽상가적 기질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문제는 내가 선호하는 분야에서만 높은 집중도가 나오지,
싫어하거나 어렵게 느끼는 분야에서는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점에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향을 다소간 가지고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콘서타가 있어야만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왜 노력이 필요한지,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과잉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ADHD 진단을 늦게 받았다.
부작용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고, 강제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상상력이 제한됨에 따라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영어의 중요성을 체감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습니다.저는 학력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있었고 대학 편입을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니 완전히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를 다시 복기해야 할까요?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었어요.
+
가정일 뿐이지만, 내가 좀 더 일찍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그래서 학업을 따라가는데에 큰 무리가 없었다면
나는 과학연구를 하고 있거나 오히려 정치분야에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환경이 받쳐주지 않았다는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2025년의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의 규모와 중고등학생때의 내가 인식하던 세계의 규모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과 정보의 누적이 전제되어야 할 수 있는 판단을 당시의 내가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디자인이라는 선택도 그리 나쁜 판단은 아니었던듯 싶다.
수학과 영어를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과학도 흥미만으로는 더이상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순수예술은 당시에도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는 선택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당시의 내가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 (단순한 필요 vs. 진정한 흥미)
이것이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음
- 현실적인 환경과 개인의 능력, 성향을 고려한 필연적인 선택
- “ADHD로 인해 특정한 분야(수학, 영어)에서는 집중이 어려웠고, 예술과 과학 중에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자신의 환경과 특성을 냉정하게 분석 - “디자인도 결국 설계이고,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분야다.”
→ 디자인을 단순히 미적인 분야가 아니라,
과학, 철학,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라는 점 - → “디자인이야말로 내가 가진 능력(논리적 사고, 예술적 감각, 실용적 접근)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였다.”
- → “단순한 생계유지를 넘어,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 ‘필연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선택’이었다는 점
🔵 기존 문장 (설명형)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인 분야가 아니라, 과학과 철학, 예술이 결합된 영역이다.
나는 디자인을 단순한 ‘예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본다.
실용성과 미적 감각, 논리적 사고가 결합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 압축된 문장 (강렬한 메시지)
“디자인은 문제 해결이다.
과학처럼 논리적이고, 철학처럼 깊이 있으며, 예술처럼 감각적이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년 과정이었지만 취업 자체가 까다로운 디자인 전공의 특성상 과정은 혹독했다.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밤을 세우며 과제를 하고 나면, 방대한 양의 이론 지식을 암기하느라 도서관에서 또 다른 밤을 보내곤 했다.
당장의 학업 성적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영어는 일반적인 교양과목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이유
내가 영어를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결국 ‘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언어 하나 제대로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해 인생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고작 언어 하나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낙오된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이었나?
군 입대를 몇 주 앞두고, 영국으로 떠난다는 그녀에게
나를 기다려달라고 요청할 권리조차 없다고 느꼈다.
그런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해서, 나 자신을 얼마나 경멸했을까?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의 언어에 더 잘 반응할 수 밖에 없나보다.
하지만 결국에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될때까지 하니까 되더라.
인생은 기회 비용에 관한 것이다.
결국 선택이란 기회 비용이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유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대가로 바칠 수 있는가.
그것이 나에게 얼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
그것이 진정한 가치의 척도라는 교훈을 나는 몸소 배웠다.
“왜 디자인을 선택했나?”
라는 이야기는 아직 다 설명하지 못했지만,
그건 또 나중에 다시 쓰기로 하고……..
어쨌든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미친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고, 실패하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래서 선택했다.
이것이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깊이 있는 회고록이네. 개인적인 철학과 경험이 잘 드러나 있고,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
특히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 라는 개념이 와닿았어. 지식을 쌓아가는 게 단순히 머릿속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결국 선택이란 기회비용이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유를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가, 인생의 얼마를 대가로 바칠 수 있는가” 이 부분도 현실적으로 강하게 와닿아. 모든 선택은 대가를 요구하고,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니까.
이제는 단순한 개인 회고가 아니라, 사상과 경험, 선택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연결한 지적 여정이라고 봐도 될 정도야.
“과학 철학 예술, 안다는 건 무엇인가.”
이 문장은 짧지만, 전체적인 글의 주제를 압축하는 역할을 해.
이 회고록은 개인적인 경험 → 철학적인 질문 → 새로운 통찰의 흐름을 가지고 있어.
특히,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 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학문과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야.
현재 글의 흐름을 정리하면,
- 유년기: 과학과 자연에 대한 관심 → 학문과 배움의 즐거움
- 청소년기: 공부를 통한 해상도 상승, 그러나 한계와 현실적 좌절
- 성인기: 현실적 한계 속에서 개인 브랜딩과 디지털 정체성 구축을 결심
후반부에서 영어 학습과 ADHD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글의 중심이 다소 분산돼.
이야기 자체는 의미 있지만, 메인 주제와 연결되는 방식이 조금 약해.
예를 들어, ADHD 이야기를 할 때도 단순히 “나는 집중력이 부족했다”가 아니라,
-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ADHD 특성과 어떻게 맞았는지
- 영어 학습과 디자인 공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런 방식으로 메인 스토리와 엮어주면 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어.
p.s. 나에게도 다른 길이 있었을까
이 글을 보면, 네가 선택한 길이 “불가피한 운명” 처럼 보이긴 해.
그런데 정말 다른 길이 없었을까?
내가 보기엔,
“다른 길이 있었지만, 결국 너는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아.
1.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길
네가 지나온 과정에서, 이론적으로는 몇 가지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 거야.
① 과학자로서의 길 (순수 학문)
- 학문적 호기심과 깊은 탐구력은 과학자로서 적합한 특성이야.
- 하지만, 학문의 길은 순수한 지적 욕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겠지.
(논문, 연구비, 실용성의 압박, 정량화되지 않는 가치 등) - 결국, “배움의 즐거움”이 아니라 “연구직의 현실”이 중요해지는 순간 이 길은 어려웠을 거야.
② 철학자 혹은 사상가의 길
- 네가 탐구하는 주제(과학, 철학, 예술, 인식론)는 학문적 깊이가 있어.
- 하지만, 철학은 구조적으로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분야야.
- 이 길을 가려면,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면서 인지도를 확보해야 해.
→ 하지만, 네가 이미 블로그와 웹사이트를 통해 디지털 브랜딩을 선택했으니,
철학적 탐구를 실현하는 방식은 결국 현재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③ 전통적인 직장인 (안정적인 길)
- 만약 네가 “안정적인 삶” 을 최우선 가치로 뒀다면,
디자인이 아니라 대기업, 공무원, IT 엔지니어 등의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어. - 하지만, 네가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고 싶다.”
→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겠지. - 따라서, 전통적인 직장인의 길은 너와 맞지 않았을 확률이 높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지금 이 길을 선택한 이유
위의 선택지들을 보면, 다 가능한 시나리오였어.
그런데 네가 선택한 길은 “디자인 + 디지털 브랜딩 + 창작” 이었지.
왜일까?
① 창의성과 논리의 균형을 원했기 때문
- 과학, 철학, 디자인, 테크놀로지…
이 모든 걸 조화롭게 다룰 수 있는 분야는 많지 않아. - 디자인은 시각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를 동시에 요구하는 분야야.
(즉, 네가 가진 강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었겠지.)
② 직접적인 창조와 영향력을 원했기 때문
- 과학이나 철학은 결과를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야야.
반면, 디자인과 디지털 브랜딩은 즉각적으로 결과를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 - 네가 지금까지의 회고록을 통해 보여준 특징은
“추상적인 개념을 탐구하는 것” + “그걸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 이었어.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이런 성향과 잘 맞아떨어졌을 거야.
③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기 때문
- 너는 “틀 안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같아.
- 전통적인 회사 시스템에서는 “너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이 어렵겠지.
- 그러다 보니, 디자인과 브랜딩이라는 자기 표현이 강한 길이 자연스럽게 선택됐을 거야.
3. 결론: 다른 길은 있었지만, 네가 선택한 길이 최적의 길이었다
네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었어.
하지만, 그 선택은 외부적인 강요가 아니라, 네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정 이었을 거야.
✔ “다른 길이 있었는가?” → 있었다.
✔ “그 길을 선택했으면 더 나았을까?” → 아니, 결국 지금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 “왜냐하면?” → 네가 원하는 가치와 방식에 가장 잘 맞는 길이었기 때문.
너는 네 방식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표현하고, 공유하고 싶어 했어.
그걸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 네가 선택한 디자인과 디지털 브랜딩이었던 거지.
그러니까, 이 길이 너에게 “유일한 길”은 아니었지만, “최적의 길”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네가 다른 길을 선택했어도 결국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해.
p.s. – 2
그 아이는 내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멀리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마지막에는 행복해지길 바랐지만, 현실은 너무 잔인하고 비참했다,
현실은 너무 잔인하고 비참했다.
날개가 부러지고, 마음이 아프고, 고통으로 가득 찬 당신의 모습을,
지켜볼 자격조차 내게는 없었다.
과거의 내 선택이 죽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조금만 더 솔직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달랐을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해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는 것을,
왜 잃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을까?
네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 강렬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심장을 쥐어짜듯이 다가온다.
아마도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잘되길 바랐던 마음이었겠지.
그런데 현실은, 네가 바랐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고, 오히려 네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결과가 되어버렸다는 거고.
이 글을 보면,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솔직할 수 있었더라면”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왜 잃기 전엔 몰랐을까”
이런 후회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
1. 네가 그때 선택한 것은 최선이었을까?
지금의 너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
하지만, 그때의 너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선택을 했을 거야.
네가 택했던 길은 그 사람이 자유롭게 날아가길 바라는 것이었고,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덜 아픈 방식이었을까?
네가 그 사람에게 더 솔직해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몰라.
하지만, 솔직함이 항상 정답은 아니야.
만약 네가 그때 솔직했다면,
그 사람은 네 마음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수도 있어.
어쩌면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너를 걱정하며 떠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보면,
네가 한 선택은, 그때의 너로서는 최선이었다고도 할 수 있어.
2. 변하지 않는 마음 vs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하더라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 문장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너는 그 마음을 지키고 싶었는데,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게 모든 걸 바꿔버렸고,
그 과정에서 너는 “과거의 선택을 죽을 만큼 원망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겠지.
근데 말이야,
진짜 변하지 않는 마음이란 건,
상황이 바뀌었다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거야.
너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사람을 위해 아파하고, 후회하고 있어.
그건 그만큼 너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킨다는 것과, 변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야.
너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거야.
그걸 인정하고, 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게 중요할지도 몰라.
3. “지금의 우리는 달랐을까?”
너무 잔인한 질문이다.
네가 그때 더 솔직했다면, 더 용기를 냈다면, 그 사람을 붙잡았다면…
지금의 너는 덜 후회했을까?
지금의 그 사람은 덜 고통스러웠을까?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너희는 함께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더 큰 상처를 주고받고 헤어졌을 수도 있고,
어쩌면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수도 있지.
확실한 건, 네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거야.
네 선택이 옳았든, 아니든,
그 감정이 가짜였던 적은 없었다는 것.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때의 너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진심으로 바랐던 것처럼,
지금의 네 자신도 더 아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너무 네 자신을 몰아붙이지 마.
그때의 너도 최선을 다했고,
지금의 너도 여전히 그 마음을 지키고 있잖아.
“너의 생각에 유념하라 그것은 말이 된다.
너의 말에 유념하라 그것은 행동이 된다.
너의 행동에 유념하라 그것은 습관이 된다.
너의 습관에 유념하라 그것은 성격이 된다.
너의 성격에 유념하라 그것은 운명이 된다.”나는 이제 어떤 발자취를 남기게 될까? 앞으로의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해야할까?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네.
네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단순히 우연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네 사고방식과 선택이 쌓여서 결국 지금의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 명확해 보여.
그렇다면, 앞으로의 방향성도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거야.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네가 설정해야 할 방향성이 더 뚜렷해질 수도 있어.
1. 네가 남길 발자취는 무엇이 될까?
네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지식을 탐구하고, 표현하고,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해왔어.
즉, 네가 남길 발자취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1️⃣ 디자인을 통한 문제 해결
→ 단순한 미적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성과 기능, 철학이 결합된 디자인
2️⃣ 디지털 브랜딩과 정체성 구축
→ 단순한 블로그가 아니라, 지식과 철학을 공유하는 플랫폼
3️⃣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
→ 내가 연구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음
즉, 네가 남길 발자취는 단순히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에 관한 것이 될 거야.
2. 앞으로의 방향성: 네가 설정해야 할 것들
방향성을 설정하려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어.
① 나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브랜딩, 철학, 기술이 결합된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음
- 예를 들면, “디지털 아카이브 + 창작물 + 철학적 탐구 공간” 같은 형태
② 나만의 브랜드와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 이미 개인 브랜딩과 웹사이트 구축을 하고 있으니, 이걸 더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음
- 예를 들어,
- “나는 어떤 스타일과 철학을 가진 디자이너인가?”
- “어떤 사람들에게 내 작업이 의미를 가질 것인가?”
- “나의 작업이 단순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
③ 지금부터 어떤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가?
- 네가 인용한 격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습관이 운명이 된다” 는 거야.
- 지금부터 어떤 작은 실천을 하느냐에 따라, 네가 남길 발자취도 바뀌게 될 거야.
- 예를 들면,
- 매일 30분씩 블로그 글을 쓰기
- Figma/디자인 시스템을 연구하고 정리하기
- 철학적, 과학적 개념을 디자인과 연결하는 사고 실험하기
이런 습관들이 쌓이면, 결국 그것이 네 정체성이 되고, 네가 남길 발자취가 될 거야.
3. 결론: 네가 가야 할 길은 이미 결정되었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과거에 해온 선택들이 모여서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길 역시, 네가 오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디자인” →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철학과 사고방식을 담는 도구
✔ “브랜딩” → 단순한 개인 웹사이트가 아니라,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
✔ “지식과 해석” →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
결국, 네가 남길 발자취는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야.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체계를 세우고, 공유하는 것”
이게 네가 가야 할 방향성이 아닐까 싶어.
어떻게 생각해?
지금 네가 설정한 방향성과 비교해서,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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